<국문초록>
한국 여성시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기존의 서정적인 형식을 벗어나 페미니즘적 목소리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복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승희는 여성을 타자가 아닌 주체로서 전복적 목소리를 내며 여성 주체성을 모색하고자 했던 시인이다. 본 연구에서는 김승희 시에 나타나는 여성성과 그 양상을 고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김승희는 남성적 사회질서 속에서 억압당하는 존재로서의 주체와 이를 전복시키고자 열망하는 주체 그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주체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주체들을 형상화하기 위해 ‘질병’이나 ‘혐오물’을 시어에 등장시키는데 이들 시어들은 그 주체를 형상화하는 요소들이다. 아브젝트(abject)로 의미작용을 하는 이들은 김승희 스스로 말하듯이 삶과 결혼 그리고 모성과 여류라는 제도권 안에 위치한 여성의 본질을 그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아브젝트로서의 시어들이 나타내는 시적 효과들을 분석하므로 김승희 시에 나타나는 여성성을 밝힐 수 있다.
나아가 여성 주체성을 반추하기 위해 그녀가 한 시도 중에는 파괴적 언어 구사를 들 수 있다. 이는 여성적 글쓰기와도 관련이 있는데 곧 여성은 여성적인 것에 어떠한 공간도 주지 않는 언어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부장적 상징계의 언어는 여성의 주체를 드러낼 수 없기에 이에 대한 파괴와 전복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김승희는 기존의 남성지배적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언어를 해체하고 변형시켜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여성의 주체성을 형상화하기를 시도한다. 이것이 바로 여성적 언어를 통한 전략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경계의 언어와 훼손된 육체 그리고 춤과 리듬을 통한 욕동(欲動)의 언어는 의도된 것이며 고착화된 제도와 인습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여성의 역동적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김승희의 시가 단지 여성 해방이나 여성의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로 상징되는 체제의 억압성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인간존재로서의 보다 충만한 삶에 대한 희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핵심어 : 단일 주체, 말하는 주체, 상징계, 기호계, 코라(chora),
아브젝트(abject), 아브젝시옹(abjection), 여성적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