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국내 모더니즘의 건축 중 교육연구시설을 통하여 서구 모더니즘이 국내에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이 되었으며, 수용 과정에서 나타난 국내 모더니즘의 독자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알아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1950년대 6.25의 발발 이후 전후 복구사업 및 196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시작으로 국내 경제는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1970년대 국내 건축계는 활발한 건축 활동이 일어나게 된다. 시기적 특성과 맞물려 건축환경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며, 이에 따라 새로운 건축방법의 필요성이 국내 건축계에 대두되게, 해외건축학교 출신 건축가들의 국내 귀국을 통하여 이들을 통한 국내 건축 작품 활동이 활발해 지는 시기이다.
서구 모더니즘 건축의 영향 하에서 건축공부를 하고 국내에 귀국하여 건축 활동을 시작한 건축가들을 통하여 국내에는 모더니즘 건축이 꽃피기 시작한다. 즉 국내 모더니즘 건축의 본격적인 태동기이며, 적극적인 수용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기적 특성과 맞물려 국내에서는 모더니즘 건축의 독자적 특성이 담론으로 떠오르며 활발히 탐구되고 논의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본 연구에서는 국외 보편적 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국내 모더니즘 건축의 위상을 살펴보기 위하여 여러 작품을 살펴볼 수 있지만, 1970~1980년대 사이에 지어진 국내 교육연구시설을 살펴봄으로서 교육연구시설이라는 제약사항을 지닌 건물들을 통하여 모더니즘 건축의 수용 방식에 대한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김종성이 설계한 아주대학교 건물을 중심으로 하여 그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영향 받았던 부분을 국내에서 어떻게 실현하였는지 살펴봄으로서, 미스의 모더니즘 건축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방법은 다음의 단계를 통하여 이루어 졌다.
첫째 배경적 고찰로서 시대적 배경 및 건축적 배경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국내외 모더니즘 건축의 발전과정에 대하여 알아 보고자 한다. 국내의 1970년대 이후 교육 연구 시설을 중심으로 하여 그 발전 과정 및 특징을 알아본다.
둘째 김종성을 통한 서구모더니즘의 수용과정에 대하여 알아보며, 특히 미스 반 데어 로에를 통한 모더니즘의 수용에 대하여 알아본다. 또한 미스의 계획 및 김종성의 계획을 통하여 이러한 계획들이 추후 교육연구시설에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지에 대하여 알아본다.
셋째 아주대학교 교육연구시설을 통하여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모더니즘이 국내에 어떠한 식으로 수용이 되고 나타났는지에 대하여 알아본다. 특히 각 건물별 특징을 분석하여 어떠한 유사점 및 독창성을 지니는지에 대하여 연구한다.
이상의 과정을 통하여 도출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 째, 국내 건축환경의 변화에 대한 촉진 작용이다. 김종성이 미국에서 귀국한 후 철과 유리를 중심으로 한 건축적 재료의 사용으로 인하여 이전까지 콘크리트의 사용에만 머물러 있던 국내 건축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점이다.
둘 째, 모더니즘의 수용에 있어 나타난 독자적인 특징이다. 미스가 공간의 익명성과 유니버셜 스페이스를 강조하였다면, 김종성의 경우 구조적 간결성과 공간구성의 기법은 수용하되, 빛과 관련된 고민과 기둥의 사용방식 및 벽체의 적극적인 사용을 통하여 국내 특유의 수용 과정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셋 째, 루버의 출현이다. 미스의 건축에서 I형 빔을 사용하여 멀리언을 강조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김종성은 80년대 이후 자신의 건축에서 루버라는 독자적인 어휘를 만들어 내어 사용함으로서, 미스와는 비슷하지만 조금더 풍부한 입면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에너지 효율적인 측면에 대한 고심 끝에 나온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대상인 서구모더니즘의 국내 수용과정에 있어서 1세대로 분류될 수 있는 김종성의 연구 이외에도 김종성의 영향아래에서 수학한, 즉 간접적인 모더니즘의 수용을 통하여 국내에 지어진 여러 건축물의 연구를 통하여, 과연 국내의 독자적인 수용이 이루어 졌으며, 이후 어떠한 변화의 과정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반듯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