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질투의 감정이 드러난 세 편의 설화를 구조적으로 분석하였고 질투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검토해보았다. 각 편의 이야기 결론이 어떻게 맺어지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비교하여 각 이야기의 서사가 갖는 의미를 파악해 보았다.
이 논문의 목적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느끼고, 우리 감정을 파괴할 수도 있을 정도로 중요한 감정인 질투의 문학감상치료의 가능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은 살아가면서 늘 느꼈던 질투가 필자에게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중심으로 생각하면서였다. 그러다 질투의 감정이 삼각관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가문소설, 처첩간의 갈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고전소설에서와 같이 꼭 파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애정관계의 질투보다 더 자아 정체감을 흔드는 질투가 바로 경쟁관계의 질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라는 감정이 특별한 사람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즉, 모든 이가 느끼기 때문에 꼭 해결해야 하는 감정이라면 특히나 아직 자신의 정체성이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질투의 치료는 필수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여 살펴본 자료는 <주몽설화>, <노힐부득 달달박박>, <태공 춘추공>의 세 편이었다. 세 설화는 모두 질투의 상황이 드러나면서도 그 결과가 상이해 작품들을 구조를 분석하여 비교하다 보면 작품이 지닌 치료적 효과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주몽설화>에서는 대소왕자와 주몽의 관계 즉 신분의 차이가 나는 이복형제 사이에서의 질투를 보여주고 있고 <노힐부득 달달박닥>에서는 경쟁관계에 놓여있던 두 친구 사이의 질투를 보여주고 있다. <태공 춘추공>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만나게 되는 경쟁자인 형제 관계 사이에서의 질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세 설화는 질투라는 소재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 해결양상은 매우 상이하다.
각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주몽설화>와 <노힐부득 달달박박>은 ①상호우위에 입각한 비슷한 능력, ②같은 것을 추구 하고 있는 경쟁관계 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설화이다. 그러나 두 설화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결과는 아주 상반적이었다. 대소의 질투는 파괴적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는 반면 박박의 질투는 자신을 스스로 성불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다음으로 <노힐부득 달달박박>과 <태공 춘추공>을 비교해보면 ① 두 설화 모두 선택에 관한 문제가 언급되고 있으며 ② 서로의 관계가 아주 가까워 쉽게 경쟁관계에 빠질 수 있다는 것과 ③적대심을 드러내기 힘든 관계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설화는 결과적으로 질투의 주체가 스스로 질투의 감정을 다스려가면서 질투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힘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질투의 감정이 단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며 질투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신의 욕망을 찾아 가다보면 이를 통해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질투는 창조적 생산이 되는 것이다.
각 설화들은 경쟁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풍요 속에서 감당하지 못할 결핍을 만났을 때 대소왕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자신의 신변을 위협하는 관계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자 한 행위가 실제로는 자신을 파괴한 행동들이 되었다. 이에 비해 <노힐부득 달달박박>에서 박박은 상실감과 질투심을 상대에 대한 인정과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인정하면서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질투의 감정에 대한 인정과 현재 나의 모습을 바로 직시할 때 문제의 해결책이 생기기도 한다. <태공춘추공>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모습은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욕망의 범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욕망을 인정하고 ‘현실의 나’와 ‘소망의 나’가 가지고 있는 관계의 이질성을 파악하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된다. 현재의 모습을 파악하여 어느 지점이 문제인지, 문제가 되는 지점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질투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각 설화를 읽으면서 주인공들처럼 질투의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주인공들에게 동정어린 연민을 보이기도 했다. 이상의 세 설화는 우리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으며 질투라는 복잡다단한 감정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을 보여주며 우리의 공감대를 자극하고 있다. 그 중에는 부정적 결론으로 흘러가는 작품도 있었고 현대의 우리가 추측해 볼 결과와는 상이한 결과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질투라는 감정을 새로운 상황의 발로로 만들어준 작품도 있었다.
이렇게 각 작품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질투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를 모색하게 되었다. 질투를 단지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치부하던 과거와는 달리 질투의 감정을 재조명하며 생산을 향한 긍정적 방향으로 결과를 모색해 볼 수도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의 고전 작품에는 이미 이렇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 문제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해 나간 설화들이 있었다.
최근에 들어 욕망을 긍정적인 힘으로 바라보는 논의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설화 속에서 민중들은 자신이 처한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해 가는 방법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 작품을 살펴보면서 논의를 진행시켜 나갔기 때문에 각 작품들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심도 깊은 논의가 전개되지 못한 점이 한계로 남는다. 또 각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문학치료의 방안 마련도 후속 논의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