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 초록>
이 논문은 황순원 장편소설의 서술기법과 관련하여 작품 해석과 독자의 수용 문제를 함께 검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그간의 황순원 장편소설의 서술기법에 관한 연구가 텍스트 내재적 구조 분석에 치중하여 역사․사회적 층위를 아우르지 못한 점, 텍스트의 생산 및 재상산과 관련한 긴장 국면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서사학 이론과 함께 리쾨르의 이야기 해석학을 논의의 전제로 삼았다. 리쾨르의 이야기 해석학은 삼단계의 미메시스 과정을 통해 삶의 실천적 차원을 끌어들여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서술 기법을 크게 시점, 시간, 중첩과 교차, 인물 구성의 측면으로 나누고 이와 같은 서술 기법이 해석학적 방법론 속에서 어떻게 텍스트의 의미 해석에 관여하는지에 주목하였다. 또한 독서행위에 수반되는 ‘긴장’과 ‘이완’의 변증법과 ‘자기화’와 ‘소격화’의 변증법을 통해 의사소통 과정에 수반되는 정신적 체험을 살펴보고 이것이 삶의 재형상화 과정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긴장’과 ‘이완’이 주로 텍스트 내적 질서와 관련된 정신적 체험이라면 ‘자기화’와 ‘소격화’는 텍스트의 해석과 수용에 관련된 정신적 체험으로 삶의 실천적 영역에 관련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이론적 전제를 바탕으로 본론에 해당하는 Ⅲ장에서 논의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1절 ‘서술 국면의 차이와 초점화의 선택 양상’에서는 시점과 관련한 서술 기법이 어떤 의미 해석을 가져오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절에서는 서술자가 텍스트의 관념 형태를 이끌어 가는지 혹은 작중 인물들이 텍스트의 관념 형태를 이끌어 가는지에 따라 ‘서술자의 단일한 시각과 초점화의 변조’, ‘인물의 다양한 관념에 따른 초점화의 변조’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전자의 대표적 작품은 <카인의 후예>와 <인간 접목>이다. 이 작품들은 서술자와 초점화자가 단일한 지배 관념으로 제시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긴장’을 체험하도록 한다. 그래서 서사의 의미를 파악하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서술자의 관점이 지나치게 초점화자의 관점에 밀착되어 있어서 ‘소격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한다. 다만, 지각적 국면에서 정보를 제한하여 제시할 때에는 ‘소격화’의 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후자의 대표적인 작품은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일월>이다. 이 작품들은 타인들의 관점을 유추하여 텍스트의 관념 형태를 추출해 내야 하기 때문에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폭도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의 내적 초점화 방식은 심리적 국면에서 인물들의 경험을 자신의 경험과 동일한 것으로 느끼면서 ‘자기화’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초점화의 지각적 국면에서 공간적, 시간적 요인이 정보를 한정하고 있어서 ‘소격화’의 계기를 만들어낸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일월>같은 작품들은 <카인의 후예>와 <인간접목>에 비해 ‘긴장’보다는 ‘이완’의 경험이 우세하게 된다.
둘째, 2절 ‘서술 시간의 착오 양상과 의미 효과’는 시간착오와 관련한 서술 기법이 어떤 의미 해석을 가져오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절에서는 빈도, 순서, 지속 중 어떤 시간착오 서술이 지배적인가에 따라 ‘체험의 누적과 소급 제시에 의한 태도의 전환’과 ‘서술의 가속과 감속을 통한 반성과 통찰’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인간접목>과 <일월>이 있다. <인간접목>의 시간착오 서술 방식은 상이한 감정을 경험하는 주인공의 반복적 체험을 경험하도록 하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반복적인 정보 제시로 인해 ‘긴장’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일월>은 순서와 관련한 시간착오 서술 중 소급제시가 빈번하게 활용되고 있다. 텍스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등장인물들에 대한 과거의 기억들을 조금씩 보여주다가 가장 중요한 정보를 마지막에 제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이완’을 경험하게 되고 ‘소격화’의 계기를 갖게 된다.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카인의 후예>와 <신들의 주사위>가 있다. <카인의 후예>는 시간착오 서술방식과 인물의 행위를 자연의 시간과 조응시키는 방식을 통해 당대의 시간을 새롭게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불협화음적 현실에 대한 해결방식을 근대적 기획과는 다른 방향에서 찾도록 하고 있다. <신들의 주사위>는 반복서술을 통해 일상적 시간을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일상적 시간의 압도적 우위 속에 내재적 시간을 간간이 끼어들도록 하면서 새로운 시간 체험을 하도록 하고 있다. 진정한 삶의 시간을 변질시키는 일상적 시간의 감속 서술이 ‘소격화’를 가져오고 별다른 의식 없이 살아가는 일상적 시간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재적 시간의 가치와 중요성은 감속보다는 초점화로 그 의미를 담보하고 있다.
셋째, 3절 ‘중첩과 교차 서술을 통한 의미 확장’은 서사 성분의 결속 양상과 이에 따른 은유적 탐색과 환유적 탐색의 우위에 따라 ‘서술의 중첩과 은유적 탐색, ’대비적 서사의 교차 진술과 환유적 탐색‘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이 두 가지 유형은 한 작품에 한 가지만 나타나기도 하지만,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움직이는 성>과 <신들의 주사위>가 있다. 이 작품들은 서술의 중첩을 보이면서 각각의 중핵과 관련된 위성들이 환유적 관계에 따라 의미화되기 보다는 은유적 관계에 따라 의미화된다. 텍스트 초반에는 환유적 문맥 속의 각 인물들의 발화와 에피소드가 어떤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자각하는 정도지만 텍스트 후반에 가면 이 발화와 에피소드들이 은유적으로 중첩되면서 어떤 의미를 투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긴장‘을 가져오게 되고 은유적 탐색을 벌이도록 한다.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일월>, <신들의 주사위>와 같은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에는 교차 서술이 자주 등장하며 제시되는 정보들을 서사의 전진적인 추이 속에서 인접적으로 연결시켜가는 환유적 탐색이 우세해진다. 그리고 대비적 성격의 서사가 교차적으로 진술되고 있어서 의미의 ‘지연’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지연’은 ‘이완’을 형성하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점차 ‘긴장’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만 결말 방식에 따라 어떤 텍스트는 ‘긴장’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완’으로 남아 있기도 한다. <일월>같은 경우 결말에 이르러도 텍스트가 어떤 구체적 방향을 지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이완’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이완’의 체험 자체가 ‘자기중심성 허물기’라는 삶의 자세를 재형상화하도록 한다.
넷째, 4절 ‘인물 관계 양상의 해석학적 효과’에서는 인물과 관련한 서술 기법이 어떤 의미 해석을 가져오는지를 분석하였다. 이 절에서는 서사 전개 과정에 따라 일차적 성격 지표의 의미가 심화되는 유형과 의미가 역전되는 유형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이것은 ‘인물의 내면화와 역사 현실의 간접 제시’와 ‘성격 지표의 변이와 의미의 역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카인의 후예>와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있다. 이 작품들은 서사 진행에 따라 일차적 성격 지표의 의미가 심화되면서 ‘긴장’을 형성하고 역사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작중 인물들의 관계망 속에서 성격 지표를 재구성하여 당대 현실을 재형상화하도록 하는 방식을 보인다.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움직이는 성>이 있다. 이 작품의 인물 관계의 양상과 성격 지표의 변이는 ‘소격화’를 가져오면서 ‘타자’를 재형상화하도록 한다.
위와 같이 이 논문에서는 황순원 장편 소설의 서술 기법과 수용에 관한 문제를 서사학과 해석학의 통합적 접근방식으로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황순원 장편 소설에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과 분석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는 황순원 소설 뿐 아니라 우리 소설을 분석하는데 보다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틀을 제공하여 우리 소설의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는 유용한 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이야기에 삶의 실천적 영역을 끌어들이고 의사소통 과정에서 ‘긴장’, ‘이완’ 그리고 ‘자기화’, ‘소격화’와 같은 정신의 체험을 포함시키고 있는 해석 방식은 소설이 독자에게 어떻게 수용되며 의미화 되는지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황순원 장편소설의 서술기법이 텍스트의 의미 해석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분석하면서도 실제 현실에서의 수용 양상까지는 천착하지 못했다. 황순원 장편소설의 서술기법과 수용의 문제가 보다 온전히 밝혀지기 위해서는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실증적 자료까지 검토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이와 같은 남은 과제는 추후에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