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소설은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에 큰 사건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자잘한 일상을 다루면서 여성인물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년여성의 삶까지를 두루 다루고 있음으로써 여성의 일대기를 읽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본고는 오정희 소설 중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오정희가 다루는 여성의 문제는 상대 남성과의 과격한 격전이나 갈등보다는 여성의 존재양상을 살펴보는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의 삶의 조건 안에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가 강제한 규율이 깔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성의 질서가 보편적 기준으로 자리 잡은 삶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확인해 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여주인공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정체성 찾기 과정을 정리하였다. 각 작품들의 인물은 중산층의 중년 주부들인데 가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단절되고 소외되어 불안감과 내적 혼돈을 느낀다. 반복되어 단조롭고 권태로운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로 그리움의 대상을 ‘그’라는 대체물로 형상화하기도 하고 가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남편과 잠시 헤어져 있는 기간에, 직접적인 외출이나 가출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얻는다. 가출이나 외출은 단순히 부부 갈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생활에 더욱 충실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된다.
여성 주인공들은 이러한 형태의 자아탐색을 통해서 대면하게 되는 자아의 모습은 허무적이고 비극적인 존재의 확인으로 귀결되고 있다. 「바람의 넋」에서 은수는 전쟁 중에 부모와 쌍둥이 여동생을 잃은 유년의 자아를 회복하고 있으며, 「어둠의 집」에서 ‘그 여자’는 가족과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성찰을 통해 허무적인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 주인공들의 자아탐색의 여정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허무뿐만 아니라 삶이란 자체에 대해서도 허무적 인식을 하고 있다. 비극적이고 허무적인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한 확인에서 여성 주인공들은 일상의 ‘외적 자아’의 삶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것은 자아탐색의 여정이 도피가 아니라 허무에의 초월로 일상의 삶에 충실을 기하기 위함이다.
오정희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식은 타인의 의식을 향해 열리지 못하고 편협하며 자기의 의식 안에 철저하게 갇혀있다. 그러나 비생산적인 자폐의식은 자기의식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전환되면서 ‘내 삶은 가치 있는 삶인가’ 자문하는 반성적 측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가정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가족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보다 즉 집단 안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보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개체로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 탐색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정희 소설이 대체적으로 이러한 토대 위에 자기의 진정한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의식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 존재의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내면성을 탐구하는데 관심을 기울인 오정희 소설의 여성 인물들이 여성 주체의 경험을 형상화 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성 자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오정희는 누구보다도 여성의 삶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의 소설은 여주인공이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을 지나 성숙한 자기 발견과 성숙의 시간에 이르기까지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무난한 여성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보편적 여성의 문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의 여성의 문제를 작가 나름의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오정희 소설을 페미니즘 시각으로 분석하는 것에 대해 일부 평자는 오정희 문학이 지닌 다양한 양상을 면밀히 읽어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정희 문학이 나타내는 여주인공의 특수성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방법론이라 여겨진다. 오정희 문학이 지닌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과 여러 각도로의 분석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