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으로 박완서가 쓴 여러 주제의 작품들 중에서 자서전적 소설 세 편과 전쟁의 체험이 담긴 소설 세 편을 각각 살펴보았다.
1990년대 이후 출간된 박완서의 자서전적 소설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작품이다. 박완서가 이 세 편의 자서전적 소설을 출간한 것은 자신이 겪었던 시절의 기쁨과 아픔, 소중한 추억 등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며 독자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성장소설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싱아’로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작가가 겪었던 6·25 전쟁에 대한 경험을 세세하여 표현한, 역사를 증언하는 소설이다. 『그 남자네 집』은 작가의 애절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나타낸 작품으로 앞에 언급한 두 작품과는 달리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 않으나 많은 부분이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여 자서전적 소설이라 판단하였다.
박완서의 자서전적 소설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모습은 당차고 야무지기도 하지만, 순결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괴로워하거나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자서전적 소설에 나타난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박완서를 좋은 작가로 평가하고 기억하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박완서의 전쟁 체험과 분단의 내용이 나타난 작품들은 작가가 자신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전쟁 체험을 다룸으로써 우리 민족의 상처가 토막난 채 그대로 아물어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쓴 것들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변화하는 인물들이 나타나는데, 『나목』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봄을 기다리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이산가족을 통해 가족간의 단절을 그려낸 작품인데 이기적인 가족의 모습이 냉철한 시각으로 그려져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힘없는 여성이 입은 전쟁의 상처와 그것을 치유해 가는 방법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방법을 제시한 소설이다.
박완서는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이야기의 효능을 믿고 즐겨 이야기를 해 주시던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것과 같은 기대를 한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이야기의 힘에 이끌려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며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쓰기 때문에 박완서는 글 속에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자신의 가족사 및 현실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무척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이야기의 효능이 나타나 세상이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사람들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한 박완서는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 받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그의 소설은 재미있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박완서가 겪었던 동일한 체험이 반복되는 작품들이 상당수 있지만 등장인물과 사건이 매번 다르고 이야기 전개 방식이 흥미로워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박완서의 맏딸 호원숙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머니에게 글쓰기는 숨쉬기와도 같았고 글을 읽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도 같았다. 어떤 상황과 고통도 숨쉬기를 끊어내지 못했다. 도리어 호흡과도 같았던 글쓰기가 어머니의 운명과 고통을 이겨 내게 만들었고, 고독한 작업 중에 빛나는 자유의 기쁨은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으리라.
박완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 가득 메워져 더 이상 그것을 억누를 길이 없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자신에게는 힘든 상황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호흡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글쓰기에서 기쁨을 얻고, 자신의 운명과 고통을 이겨내는 작가 박완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좋은 작품들을 계속 쓸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가 많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박완서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완서의 소설에는 비록 그가 의도한 것이지만 그 자신의 체험이 너무나 짙게 드리워져 있어 독자들은 작품을 대할 때 작가에게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즉 작가의 체험과 판단, 경험에 많이 얽매이게 되어 독자 나름의 느낌을 가지기 보다는 작가 중심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자신이 읽은 소설의 어느 부분이 작가의 경험 중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기 때문에 작가의 경험과 소설을 적당히 분리하여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박완서의 소설을 읽을 때 허구성을 배제한 채 감상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소설은 허구성을 기본 성격으로 하는데 박완서의 소설을 마치 사실의 기록인 양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자들의 문제도 있지만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경험에서 벗어난 새로운 내용의 이야기를 쓰는 시도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이야기꾼 박완서는 현대 뛰어난 작가 중의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