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품 하면 학생들은 어려운 것으로 여기고 기피한다. 하지만 학생들을 나무랄 수 없는 것은 역시 지금까지의 고전문학교육이 시가원전의 해석에 너무 치중하였던 것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교육 방법에서는 <처용가>를 교수 학습할 경우 <처용가>의 배경설화에 대한 학자들의 관점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열거하고 그 내용을 숙지하여 대개 불교적, 역사적, 무속 신앙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하였던 것이 일반적 방법이었다. 또한 처용의 정체에 대해서도 민속학적 관점에서 무속과 관련지어 보거나 서역과의 교역으로 인한 이슬람 상인, 혹은 지방 호족의 아들이라는 견해 등으로 압축하여 이론의 정보적 내용을 전제적으로 학습하는 이른 바 기계적 주입의 과정을 반복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용가>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들을 중요한 학습 자료로 보았다.
용의 아들로서 신이자 인간이며, 세속을 초월한 초인이자 무력한 체념자이기도 한 모호한 인물 처용, 처용이 지닌 모호성은 시인들의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본고는 이런 <처용가>를 원천으로 삼아 다양하게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들에 주목하여 이런 현대적 변용 작품을 통한 고전 문학 학습의 방법론적 전환을 창작교육의 측면에서 모색해 보았다.
우선 <처용가>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 그 변용의 양상을 전통의 수용 방법의 유형에 따라 나누어서 논의를 전개했다. 교육과정에 제시되어 있는 ‘전통의 지속과 변형, 전통의 부정, 창조의 계기로서의 전통’의 세 가지 유형에 따라 변용 작품들을 분류하여 살펴보았는데, 우선 전통의 지속은 원전의 가치나 작품의 의미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여 현대적으로 변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 것이 전통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변형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원전의 형식을, 본고의 경우에는 <처용가>가 시가 작품이므로 다른 갈래인 극이나, 소설로 변형시키는 방법이 있다. 전통의 적극적 부정은 전통의 지속이나 변형과는 달리 원전이 가지고 있던 가치를 추락시키고 전도시킴으로써 전통을 부정하고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창조의 계기로서의 전통의 경우는 원전이 창작의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이 원전과는 큰 관련성을 맺고 있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전통의 지속과 변형의 경우에는 서정주의 <處容訓>, 김현숙의 <처용의 아내>, 윤석산의 <처용 처의 노래>, 김춘수의 <處容三章>, 신상성의 <처용의 웃음소리>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전통의 부정의 경우에는 황지우의 <徐伐, 서?, 서?, 서울, SEOUL>, 박제천의 <처용>, 정일근의 <취재수첩 ? 16- 처용의 도시>, 박진섭의 <처용 아비여>를 살펴보았다. 창조의 계기로서의 전통의 경우에는 김춘수의 <處容>과 <處容斷章>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7차 교육과정에서 도입한 창작교육의 구체적인 실현 방안으로서의 <처용가>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시키기 이전에 우선 창작교육관의 변화를 통해 ‘창작’의 개념에 대한 오해들을 살펴보고, 그러한 창작 교육관으로부터 이제는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논의하였다. 더불어 창작 교육에서의 ‘창작’ 개념을 교육적으로 재개념화하였다. 그리고 국어교육에서의 창작교육의 방향을 수용과 생산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설정한 뒤, 문학작품의 수용과 창작의 통합 학습의 텍스트로서의 <처용가>의 의미를 논의해 보았다.
창작 교육에 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 창작 교육의 관점이나 방향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창작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본고는 이런 현실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처용가>를 통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시도했으나, 창작 교육의 실제적인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부분에서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7차 교육과정에서 ‘창작교육’이 문학교육의 영역에 포함된 것은 ‘이해’와 ‘표현’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국어교육의 본질적인 내용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본고에서 부족했던 이런 부분을 채워나가서 7차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창작교육이 학교현장에서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