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과 형벌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연대를 추구하는 사회 통합을 위한 필수적 제도이다. 그리고 정형화된 사회통제를 목표로 하는 국가형벌권은 개인의 법익침해적인 행동에 형벌로써 대응한다. 이 점에서 국가는 개개의 시민과 대립구조를 이루게 된다. 국가와 시민의 이러한 대립구조는 근본적으로 도덕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고 선악을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와 시민의 대립구조 속에는 한 사회에서 허용가능한 사상의 범위와 질서의 경계를 나누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형법과 형벌의 가치는 바람직한 형법의 규범, 제재, 절차에 의존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지지할 때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욕망’에서 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을 지지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지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바꿔 말하면 형법과 형벌의 가치는 인간의 욕망을 지지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형법을 포함한 개별 법률의 제정 목적은 욕망의 성숙을 통해 현실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려는 시도로써 정당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것에 있다.
형사소송은 공판절차를 중심으로 전횡적인 국가의 법집행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국가권력에서 나오는 억압을 방지하며 의욕에 넘친 검사와 자기 정체성에 빠진 법관으로부터 피고인을 보호하는 것을 본질로 해야 한다. 공판절차가 제 기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에게 공판정에서 자신에게 귀속된 범죄혐의를 다툴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법정에서 나온 증거에 의해서만 피고인에게 유죄가 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는 달리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을 선출되지 않는 권력으로 정하고 있다. 이는 법관에게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관으로 하여금 더욱 양심적이고 정연한 법 논리로써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을 지워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법의 현실을 보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이 법관의 출세를 위한 거래의 대상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고, 대법원 판결마저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자발적으로 수정되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동일성에 대한 인식을 기초하고 있는 판사와 사법부의 구조는 확고하게 보장된 그들의 신분과 지위, 더 나아가 판사들의 견해 차이에 기반을 둔 판결에 대한 법적 뒷받침을 제도적인 ‘독립성’으로 보장하여 주는 모든 체계이다. 그것이 비록 재판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입각한 합리적 판결을 훼손시킨다할 지라도, 그로써 심각한 인간의 존엄성과 법익을 침해한다 하더라도, 이를 저지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아무 것도 없다. 비록 그것이 사법부 관료화의 원인이 된다 하더라도 어떠한 이유로도 사법부의 체계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없다. 판사의 ‘확신의 기초’인 선험적‧경험적 판단은 법관 개개인의 성격형성에서 비롯된 판결경향이지만 제도적인 측면이 이를 확고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따라서 개별 법관의 판결경향과 공판절차에서 법관들의 의식과 관념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비록 그것이 지식의 기초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합리론이나 경험론 모두를 법관들의 의식과 관념의 핵심에 두고 있다.
재판을 통하여 법관은 어떤 상황을 변화시키는 행동이나 사태를 의미하는 동태진술에 대한 진술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이 경우 진술가치에 대한 법관의 판단은 분쟁 당사자들의 지위와 관계없는 자의적 판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건은 사실의 관점에서나 법률적 측면에서나 유사할 수는 있어도 절대로 동일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고법원의 판결은 기껏해야 가장 중요한 지침에 불과할 뿐 절대적 원칙은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판사들의 정체성 역시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확실성의 기초는 바로 내 의식이다. 내 의식은 투명하게 깨어 있는 이성이다.” 라는 법관의 심리적 관념은 축적된 경험에 기초한 정체성으로서 이른바 ‘개념설계(conceptual design)의 역량’으로 이어지고, 이는 공판에서 판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배경지식을 토대로 당해 사건을 분석하도록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공판에서의 말과 행동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더 이상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는 법관이 선험적 유아론에 의한 경험적 지식, 경험적 표상, 언어적 표상의 개념에 대한 실재를 개념적으로 재생산하는 사고에 대한 분석작업에서 나타나는 개념의 한계다. 바로 이러한 한계는 궁극적으로 실재(reality)와 진실(substance) 인식을 목적으로 하는 공판이 비록 ‘영원한 부동의 어떤 실체’(aidios tis ousia akinetos)를 발견하기 위한 것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지향점으로 하여 무엇을 탐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탐구하느냐로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탐구의 방법은 논리적 분석에 의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공판의 목적인 실재와 진실에 대한 인식은 궁극적으로 사고와 언어의 형식들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논리적 분석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사고와 언어의 형식적인 분석이기는 하지만, 실재를 개념적으로 재생산하는 사고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절대로 간과하여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여기서 논리적 분석이란 기본적으로 사고와 언어의 형식적인 분석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 분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개념적으로 재생산하는 사고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공판에서 법관의 판결경향은 엄정한 논증과학을 산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낱말들을 배열할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 것이다. 연역적 학문의 구조와 그 논리적 출발점, 학문들의 통일성과 다양성, 학문의 구분 및 논리적 위계 그리고 무지와 오류와 부당성 등이 공판을 통하여 다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본질적 정의와 증명목적에 대한 정의(定義), 정의와 증명의 차이점, 본질적 속성의 증명 불가능성, 기초적 진리가 알려지게 되는 방식 등이 다루어지는 공판에서는 또 하나의 추론방법인 변증적 추론과 관련 기술들이 주로 논의되어야 된다. 그 다음으로 다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일응 타당한 증명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부당한 사이비 증명인 오류들을 분류하고 마지막으로 그 해결을 거론해야 한다.
실질적인 공판이 되기 위해서는 공판에서 대립 당사자들이 증명의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을 통하여 자신의 이해에 따라 상대 당사자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이 경우 공판은 소송참가자가 자신의 이해에 따라 상대 당사자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실발견이 왜곡될 수 있다. 따라서 심판관인 직업법관이 관련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업법관이 소송에 참가한 양당사자들을 어떻게 통제하는가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심판관인 직업법관은 대립당사자들이 규칙에 따라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엄격히 규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경우 직업법관은 심판관으로서의 역할을 주된 업무로 담당하기 때문에 공판준비나 공판과정에서는 세밀하게 규제하지만, 대립당사자의 소송준비나 수사절차에서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형태를 띠게 된다.
공개된 공판절차에서 진실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의미의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다수 국가의 형사소송절차는 당사자들의 경쟁과 투쟁에 대해 냉정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해당 사안의 사실관계에 대해 법정 외에서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공정한 판단자를 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경쟁하는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충돌하는 관점을 소극적이고 공정한 판단자에게 내어 보임으로써 공격과 방어를 통하여 진실에 접근해가는 방법은 과학적 합리성 이론과 매우 비슷한 아이디어에 따른 언어체계규칙을 근본원리에 바탕을 두고 형식논리 보다는 모순과 대립을 근본원리로 하는 논리적 사건 배열구성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구성은 주장과 반박의 이항대립을 통한 진지한 변증법에 의거할 때만 가능하다. 이러한 진지한 이항대립의 변증법을 통하여 입장을 달리하는 일방이 가능한 열정적으로 증거의 단계를 공격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각각의 일방이 그 사건의 사실을 증명하려고 시도하게 됨으로써 모든 측면에서 보다 더 상황의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공판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 대한 인정을 조건으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공판을 통하여 인간에게 존재의 정당성을 제공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판의 실질적 운영을 통하여 독립된 헌법기관인 법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합리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바라본다면 오늘날 사회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시민의 사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고, 법관의 실존 가치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