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의 조선 선사고고학 연구와 그 영향

Subtitle
즐문토기와 지석묘 연구를 중심으로
Alternative Title
A study on the influence of Fujita Ryosaku’s Research on Korean prehistoric archeology
Author(s)
유중현
Advisor
조성을, 김성태
Department
일반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The Graduate School, Ajou University
Publication Year
2015-08
Language
kor
Keyword
후지타 료사쿠등전량책일제강점기고고학선사고고학
Abstract
후지타 료사쿠는 일제강점기 선사고고학을 주도한 학자이다. 그의 연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검토와 비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초기 한국 선사고고학 연구에 대한 후지타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했다. 본고에서는 즐문토기와 지석묘라는 연구 주제를 중심으로, 후지타와 해방 후 초기 한국고고학의 연구들을 비교해 그 영향을 찾아보고자 했다. 후지타는 조선총독부박물관 주임 ? 조선고적연구회 간사가 되어 일제강점기 고적조사의 사무를 담당했다. 또한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로서 관료적 ? 학문적으로 높은 권위를 지녔다. 그는 선사 유적 조사를 수행하고 많은 논문을 발표하며 일제강점기 선사고고학을 주도했다. 후지타는 한반도 선사시대의 유문토기에 유럽의 Kamm Keramik을 번역한 ‘즐목문토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이 토기가 북유럽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로 전파되었다고 보고, ‘북방문화’를 주장하였다. 한편 지석묘 연구에서는 지석묘의 용어와 세부 명칭을 확립하고, 도리이 류조의 분류 방식을 이어받아 북방식지석묘와 남방식지석묘로 분류하였다. 또한 지석묘의 전파 경로를 추정하여 동남아시아 방면에서 해로를 통해 전파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후지타의 연구와 해방 후 학자들의 연구들을 비교하여 양자 간 유사성과 영향을 알아보고자 했다. 해방 후의 즐문토기 연구들은 대다수가 후지타의 ‘즐목문토기’ 용어를 변형한 용어를 사용했다. 토기의 시베리아 전파설도 유지되었다. 해방 후의 지석묘 연구에서는 후지타의 지석묘 용어 설정이 해방 후 연구에 영향을 주었던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지석묘의 분류와 전파 경로 연구에서도 유사성을 발견했다. 반면 토기 편년 연구에서는 큰 차이가 확인된다. 후지타의 즐문토기 ? 지석묘 연구는 해방 후 한국 고고학 연구에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후지타가 식민지 조선의 전형적인 관료 ? 학자였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그가 제국 일본에게 유리한 관점에서 한반도 선사시대를 보았을 가능성도 살필 수 있었다.
URI
https://dspace.ajou.ac.kr/handle/2018.oak/1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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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ars in Collections:
Graduate School of Ajou University > Department of History > 3. Theses(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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