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만 해도 교과서에는 주로 일제강점기의 저항시를 담거나 1970년대나 1980년대의 비판적 성향이 강한 이데올로기적인 시를 싣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과서 지면에 강하고 딱딱한 이데올로기의 시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 생태시 등이 많이 등장하였다. 그 중에서도 서정시의 기능을 시 안에 담고 있는 나희덕의 작품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종종 보게 된다. 이는 각박한 현실에서의 정서적 갈증을 해소하게 하는 문학의 기능에 주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국어교육 현장에서도 청소년들의 공감능력과 정서능력을 키우기 위해 그러한 시들을 교과서에 수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나희덕 시 세계 연구는 여성성, 모성적 태도를 기반으로 한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나희덕의 시는 여성성, 모성적 태도만이 아니라 문학 영역 대부분의 성취기준에 따른 시 교육에서 시 제재로 얼마든지 활용가능하다. 교육 현장에서 특정 작품과 특정 성취기준을 일대일 대응시키는 것은 작품의 이해를 협소하게 하고 교육 내용 또한 틀에 박힌 암기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한다. 본고에서는 나희덕의 시를 대상으로 하여 특정 작품과 특정 성취기준의 연결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일 수 있음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나희덕의 작품을 분석하고 교육과정이 개정된 상황에서 그의 시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2009개정 교육과정의 교과서 상 시 교육에서 활용되고 있는 양상을 살펴보고, 그의 시가 어떠한 방식으로 시 수업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 교수학습 모형을 구안해 보고자 하였다.
2009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중학교 문학 영역에 해당하는 10개(2951~29510)의 성취기준에 활용될 수 있는 문학 제재는 다양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시 작품을 활용하기에도 적합하다. 본고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나희덕의 시를 활용한 시 교육에서도 적합한 성취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나희덕 시는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나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연속적으로 작품이 수록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서정적 기능의 시를 통해 학습자들의 인문 기초소양과 긍정적 정서 함양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 1의 성취기준은 ‘2954.표현에 드러나는 작가의 태도에 주목하며 작품을 이해하고 표현한다.’이다. ‘땅끝’의 경우, 문학적 표현이 작가의 태도와 관련되어 있어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이고 참신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계점은 표현에 드러나는 의미가 학습자들에게 높은 차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참신함보다는 난해함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작가의 태도와 시적 화자의 태도를 혼동하는 학습자들에게 작가의 태도를 찾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활용될 수 있는 나희덕의 다른 작품으로는 ‘양계장집 딸’, ‘사과밭을 지나며’, ‘탱자’ 등이 있다.
교과서 2의 성취기준은 ‘2951.비유, 운율, 상징 등의 표현 방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표현한다.’이다. 이 성취기준의 장점은 작품에서 문학적 표현 방식이 드러난 부분의 의미와 문학적 효과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못 위의 잠’은 표현 방식을 통한 작품 이해에 적합한 제재이다. 하지만 작품의 이해와 표현의 기본이 되는 다양한 표현방식은 대부분의 시를 통해 다룰 수 있다는 점은 한계점으로 남는다. 활용 가능한 다른 작품으로는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어떤 그물’ 등이 있다.
교과서 3의 성취기준은 ‘2956.사회・문화・역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작품의 의미를 파악한다.’이다.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말과 행동, 인물들 간의 관계, 다양한 사건 등을 바탕으로 작품이 창작된 사회・문화・역사적 상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서정시(나희덕의 시)의 경우 사회・문화・역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한 특징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방을 얻다’의 경우, 화자 관련 성취기준이나 작가의 태도 관련 성취기준이 더욱 적합해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활용 가능한 작품을 선정하자면, ‘섶섬이 보이는 방’, ‘마른 연못’ 등이 있다.
교과서 4의 성취기준은 ‘2958.자신의 주체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평가한다.’이다. 문학 작품을 읽고 자신의 주체적인 관점에서 적절하고 타당한 근거를 들어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성취기준은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배추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학습자 수준에서의 주체적인 관점, 적절하고 타당한 근거를 들어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으므로 적절하고 타당한 근거에 대한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 또 다른 활용 작품으로는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어떤 그물’ 등이 있다.
교과서 5의 성취기준은 ‘2955.작품의 세계가 누구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지 파악하며 작품을 수용한다.’이다. 이 성취기준은 화자와 관련한 것이므로 시를 읽고 화자나 시점의 개념을 활용하여 작품의 구조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으며, 화자나 시점이 달라짐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의 분위기와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화자나 시점의 이해와 더불어 화자의 어조 및 태도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은 학습자에게 어려울 수 있다. ‘섶섬이 보이는 방 – 이중섭의 방에 와서’를 비롯하여 ‘배추의 마음’, ‘땅끝’, ‘양계장집 딸’, ‘방을 얻다’, ‘못 위의 잠’, ‘귀뚜라미’ 등 나희덕 시의 다수가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나희덕의 시를 활용한 시교육적 활용 방안에 대해 연구하였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도 서정시의 문학 교육적 측면에서 나희덕의 시는 매우 중요한 수업 제재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은 남아 있다. 나희덕 시의 효용과 한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연구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이를 통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시 교육에서 나희덕의 시와 같이 서정성이 담긴 시 활용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검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