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30년대 한국과 중국 모더니즘의 수용과 변용 양상을 바탕으로 최명익과 스저춘의 심리소설을 비교분석하여 양국 모더니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당시 한·중 양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식민지와 반식민지로 몰락하였다. 비슷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한·중 양국의 모더니즘에 대한 수용과 변용 양상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낸다.
Ⅱ장에서는 1930년대 한·중 심리소설의 전개 양상 중에서 한국 단층파, 최명익과 중국 신감각파, 스저춘의 심리소설의 특징을 논의하였다. 한국의 단층파와 중국의 신감각파는 비록 짧은 한 시기를 풍미하는데 그쳤지만 동시대 문단에 남긴 문학적 공헌과 영향은 적지 않다. 그들의 소설은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과 일본 신감각파의 영향을 받아 동시대 평양과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국과 중국의 사회 현실과 그에 대한 작가의 의식 등이 결합하여 새로운 문학 형식을 창조함으로써 현대 소설의 영역 확대와 발전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단층파의 특징을 잘 보여준 최명익과 신감파의 대표적인 작가인 스저춘을 비교 연구하는 것은 한국과 중국 심리소설의 변별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Ⅲ장에서는 서사 구조를 통해 나타나는 내면 심리를 살펴보았다. 두 작가의 심리소설의 서사 구조는 질병 서사와 이주 서사로 나뉨을 알 수 있었다. 최명익 소설의 주인공들은 신체적 질병의 차원을 넘어서서 타인이나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는 불안감의 팽배 속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신체적 질병에 둘러싸인 주인공들의 시선은 자기 안으로 향함으로써 칩거, 전망 부재의 양상을 띠고 그런 성향은 불안감을 심화시켜 다시 허무와 퇴폐적인 아픈 일상으로 이어져 확대·심화하기에 이른다. 「폐어인」, 「무성격자」에 등장한 인물들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으며 분열증, 히스테리, 강박증 등 신경증의 병적 징후은 그들의 내면적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스저춘의 심리소설에서 육체적 질병 서사를 담아낸 작품으로 「만추의 하현 달」이 있는데 주인공의 아내 또한 결핵 환자이다. 그녀는 결핵에 걸려 죽을지도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으로 주인공의 내면적인 불안을 초래한다. 「마도」, 「여관」에 등장한 인물들은 망상증과 같은 병적 징후들을 앓고 있는데, 연속된 환각 또는 환상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에 드러나는 병적 심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명익과 스저춘 소설에는 정신병적인 징후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의 내적 심리를 상이하게 표출하며 그러한 내적 심리 뒤에 깊이 숨어 있는 불안감을 나타냈다.
이주 서사에서 먼저 최명익의 「봄과 신작로」와 스저춘의 「봄 햇빛」의 여주인공들이 농촌에서 도시까지의 탈출 욕망을 살펴보았다. 「봄과 신작로」의 금녀는 조혼으로 인해 13살의 아이를 남편으로 맞는다. 이로 인해 금녀의 성은 억압당하고, 그녀의 억압된 성은 상상적 이주를 통해서 해소된다. 「무성격자」에 등장하는 주인공 정일은 기차를 타고 농촌으로 가서, 잠시 퇴폐적인 도시를 벗어났다. 「봄 햇빛」의 선아줌마는 명혼(冥婚)을 하여 남편이 없이 살았다. 그녀의 성적 억압은 임시적인 이주를 통해서 탈출구를 찾게 된다. 「마도」에 나오는 주인공 ‘나’도 농촌으로 내려가 주말을 보내며 짧은 유쾌함을 맞본다. 최명익과 스저춘 소설에 나타난 인물들은 모두 현재의 삶에서 억압받고 있으므로 다른 장소로 탈출을 욕망했다. 하지만 인물들의 그러한 욕망은 모두 실패했다. 1930년대 식민지 상황에서 자신의 이상적인 공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작가 의식이 인물들의 좌절된 탈출 욕망을 통해서 드러났다.
Ⅳ장에서는 서사 기법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살펴보았다. 두 작가의 심리소설에서 서사 기법은 상징 이미지와 의식 흐름으로 나뉜다. 우선 최명익과 스저춘의 심리주의 소설에서 전통적 이미지와 색깔 이미지를 도입하여 인물의 내적 심리를 표현한 특성이 있다. 「비 오는 길」에서는 병일의 침울한 심리가 빗소리의 반복을 통해 드러나는데, 오래 그리고 자주 내리는 ‘비’는 주인공의 내면적인 우울감을 상징한다. 한편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에서 ‘비’는 주인공의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또한 밀폐된 ‘방’과 반 밀폐된 ‘우산’은 인물 들의 소외감, 단절감, 고독감을 나타내는 특징을 보인다.
최명익과 스저춘은 색깔 이미지를 통해 인물의 이중적 심리를 표출하기도 하는데, 최명익의 「폐어인」에서 푸른색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아내의 금욕적인 생활로 인한 성적 억압에서 오는 정일의 내면적 갈등을 나타낸다. 혈색(血色)은 그가 중노인에게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적의와 취직자리를 얻기 위해 의존하는 성향을 대변한다. 「무성격자」에서 문주는 흰색의 이미지로 반복적으로 표현되었다. 흰색은 정일이 문주에게 보여주는 순결한 감정을 나타내는 동시에 더러움을 잘 타는 색깔로 문주에 대한 정일의 감정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 만수노인은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표현되었다. 검은색은 만수노인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내면 심리를 드러내며, 붉은색은 그의 돈과 토지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을 보여준다. 반면 아버지에 대한 정일의 동정심과 경멸감의 이중적인 내적 심리 역시 붉은 색으로 표현되었다. 스저춘의 「마도」에서는 검은색이 ‘나’의 공포와 불안이 드러내며, 빈번히 등장하는 빨간색은 ‘나’의 성적 욕망을 나타냈다. 「야차」에서 죽음과 공포를 상징한 하얀색은 유일한 색깔 이미지로, 주인공이 지닌 여성에 대한 공포와 욕망이라는 이중적인 심리를 나타낸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최명익 소설의 내적 독백과 스저춘 작품의 자유연상 서사 기법은 두 작가의 소설이 기존의 소설들과는 달리 깊숙한 내면의 마음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최명익의 「心紋」, 「비 오는 길」, 「역설」, 「무성격자」를 중심으로 내적 독백 서사 기법을 통해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지식인 주인공들이 세속적인 세계로의 동화를 거부하며 자아를 반성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또한 스저춘의 「마도」, 「파리 대극장에서」, 「갈매기」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연속적으로 유동하는 의식을 살펴보았다. 최명익과 스저춘의 소설은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묘사한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최명익의 작품은 주로 3인칭의 간접 내면 독백의 기법으로 인물의 사실적인 심리 상태를 보여주지만, 스저춘의 작품은 주로 1인칭의 자유 연상 기법으로 인물 자신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는 차이점을 드러낸다. 최명익과 스저춘의 작품에서 인물들의 현재의 의식은 한순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과거와의 연관성 및 의식 흐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Ⅴ장에서는 최명익과 스저춘 심리소설의 위상과 두 작가의 작품에 대한 비교연구의 의미를 밝혔다. 본고는 처음으로 서사 구조와 서사 기법을 적용하여 전면적으로 두 작가의 심리소설을 살펴본 논문이라 할 수 있다. 최명익과 스저춘의 심리 소설에 나타난 인물들의 내적 심리 표출 방식을 비교함으로써 작품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명확히 분석하였다. 그리고 두 작가가 애용하는 심리 표출 방식의 은유 효과를 살펴봄으로써 심리주의 소설이 리얼리즘 소설 못지않게 사회 배경과 긴밀한 관련성을 가진다는 점을 밝혔다. 최명익의 심리소설이 갖는 특징을 스저춘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동아시아 문학의 보편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