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가사와 규방가사에 나타난 시적화자의 목소리 비교를 위해 좀 더 자세하게 <사미인곡>,<속미인곡>과 <규원가>를 가지고 살펴보았다. 위에서 말한 시적화자는 작자의 뜻과 정서를 대변하는 존재로 작자가 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송강 정철의 두 작품은 임금을 향한 작자 자신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버림받은 여인으로 시적화자를 설치하여 연군지정을 나타내었지만 그 속에는 남성 본래의 적극적인 모습과 궁궐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임금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이 나타났다. 결국 정철의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연군지정이라는 주제를 일부종사의 유교적 이념에 부합되는 도리를 추구하는 작중 여인들을 통해 그려낸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작중여인들은 당시 여인들처럼 자신의 의지가 없이 앉아서 슬픔을 느끼고만 있는 수동적인 삶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라도 님을 따르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와 더불어 임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겠다는 것을 통해 그의 충군의식을 볼 수 있다.
<규원가>의 작자인 허난설헌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이 넓은 세상 가운데 조선에 태어났다는 점, 두 번째는 여자로 태어나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서러움을 지녀야 한다는 점, 마지막 세 번째는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한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한이 많았기 때문인지 자탄적 어조가 많은 허난설헌의 <규원가>는 작자가 시적화자를 자신과 동일한 여성 화자를 설정하고 시대와 상황에 체념한 듯한 자신의 이야기를 쓴 듯하면서도 당시의 전통적인 여인상을 무조건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자아에 대한 의식을 의연히 표현하였다. 또 외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신을 순수하게 표현해 자신 역시 한 여성으로 사랑받기 원하며 그전에 일차적으로 자신이 먼저 자신을 사랑하였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동일한 여성이면서도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자아를 생각하는 모습과 또 그 가운데는 님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을 표현하는 부분을 통해 <규원가>의 시적화자만이 가지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여성 화자를 통해 두 종류의 가사작품을 살펴보았다. 정철의 작품은 연군지정에서 기본적인 성격을 찾을 수 있고 작자가 설정한 여성화자는 사대부인 작자 자신을 대변하는 존재이며 시적 함축성이 뛰어난 여성적 어조는 독자로 하여금 정서적 몰입의 상태로 이끌었다. 허난설헌의 작품에서 화자는 여성으로서 현실의 모순들을 지적하기도 하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며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역사의 흐름 가운데 여성화자는 끊임없이 새롭게 탄생하고 있고 그 속에서 그들만의 정서를 만들어 내며 독자와 공유하기를 원한다. 근대이후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변화되면서 과거의 여성보다 많은 여성들의 글쓰기가 생기면서 여성화자의 모습도 변모되었는데 그럼에도 김소월의 <진달래꽃>등의 작품에서의 여성화자와 같이 전통적인 여성화자가 갖는 매력은 현대 작품 속에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